여유 (성가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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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유(呂鮪, ? ~ ?)는 중국 신나라, 후한 초기의 무장이다. 우부풍 진창현 (지금의 바오지시 천창구) 사람이다.
적미가 후한에 항복한 이후에 관중 지역에는 여러 무장들이 할거하고 있었는데, 여유도 그 중 하나로 진창현에 웅거하고 있었다.[1] 그리고 몇몇 무장들과 함께 이웃한 익주에 생긴 성가를 섬겨, 함께 장군이 되고 군사시설을 갖추고 병사를 훈련하며 수십만 군대를 모았으며 한중군에 군량을 두고 그 치소 남정현에 궁을 쌓았다.[2] 후한의 풍이가 연잠 등 다른 관중 군웅들을 무찌르고 굴복시키는 동안, 장안현의 장한(張邯), 패릉현의 장진(蔣震)과 함께 공손술을 섬기고 있었다.[1]
27년, 성가의 황제 공손술이 보낸 장군 이육(李育), 정오(程烏)와 합류해 삼보로 들어가려 했으나, 농서의 외효의 도움을 받은 풍이와 조광(趙匡)에게 격파돼 먼저 정오가 한천으로 달아났고 여유는 정오를 무찌르고 온 풍이에게 이육과 함께 진창에서 대패해 한중으로 달아났다.[1][2][3]
35년, 잠팽이 촉으로 쳐들어왔을 때 동료 연잠, 왕원, 공손회 등과 함께 광한·자중에서 잠팽을 저지했다. 그런데 잠팽은 부장 장궁에게 정면을 맡기고 자신은 성군의 배후를 찔러 무양(武陽)을 함락했으며, 이에 광한·자중의 성군은 흔들렸고 이 틈을 탄 장궁의 기습을 받아 대패하고 만여 명이 물에 빠져 죽었다.[4][5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