혜공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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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국의 불교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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혜공(惠空: fl. 7세기 후반)은 신라 중기의 승려이다.[1] 어릴 때부터 이상한 행동을 많이 하였으며 승려가 되어서도 삼태기를 지고 취한 채로 다니며 노래하고 춤을 추었으므로 사람들이 부궤화상(負蕢和尙)이라고 하였고 그의 암자를 부개사(夫蓋寺)라고 하였다.[1]
만년에는 항사사에 있으면서 원효(元曉: 617-686)가 여러 불교 논서를 지을 때 의심나는 것이 있으며 언제나 혜공에게 물었으며,[1][2] 해동 진언종(眞言宗)의 별파인 신인종(神印宗)의 조사(祖師)가 된[3] 명랑(明朗: fl. 668)이 금강사를 창건하여 낙성식을 했을 때도 혜공을 정중히 모시고 있다.[2][4] 이런 점에서 볼 때 혜공의 불교에 대한 깨우침은 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.[2]
어느 때 혜공은, 승략(僧䂮) · 도항(道恒) · 승예(僧叡)와 함께 중국의 구마라습(鳩摩羅什: 344-413) 문하의 4철(四哲)의 한 명인 승조(僧肇: 374-414)가 저술한 《조론(肇論)》을 보고는 "이것은 내가 옛날에 지은 것"이라고 했다고 전한다.[2] 당시의 사람들은 혜공을 승조의 후신이라 여겼다고 한다.[4]
혜공은 기적을 많이 행하였는데, 죽을 때도 몸이 공중에 떠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.[1] 신라의 10대 성인 중의 한 사람이며 흥륜사 금당에 탑이 세워졌다.[1]
각주
[편집]- ↑ 가 나 다 라 마 인명사전 > 한 국 인 명 > ㅎ > 혜공, 《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》
- ↑ 가 나 다 라 고익진 (1989). 《한국 고대 불교 사상사》, 동국대학교 출판부, p.133.
- ↑ 동양사상 > 한국의 사상 > 삼국시대의 사상 > 삼국시대의 불교사상 > 명랑, 《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》
- ↑ 가 나 운허 & 동국역경원, "惠空(혜공)"[깨진 링크(과거 내용 찾기)], 《불교 사전》. 2011년 3월 13일에 확인.